믿음글

고난의 영성(욥기 2장 3절).......차준희 목사 / 이천중앙지방 연합사경회

유보배 2025. 1. 20. 10:26

 어제저녁부터 저희 오천교회에서

이천중앙지방 연합사경회가 열렸는데요

모두 7번의 말씀을 전하실 거예요

 

강사님은 한세대학교 구약학 교수이시며 

현재 두란노바이블 칼리지 강사

그리고 한국구약학연구소 소장님이십니다.

 

https://youtu.be/8_kZReK3 CIo

수요일 저녁까지 어어지는데

첫째 날 저녁 '고난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셨는데요

 

많은 도전과 은혜를 받아서

제게 공감이 되었던 목사님의 말씀을 전해드리니

영상으로 꼭 들어보시기를 강추합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겁니다. 

고난의 일부는 우리가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고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우리가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라는 

약속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실제로 우리 삶에서

모든 문제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욥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면서

욥의 경험을 통해서

3가지 메시지를 전하려고 합니다

 

1. 까닭 없이 고난이 올 수 있다

2. 고난이 올 때 더 경건해질 수 있다

3. 모든 고난은 과정이지 마지막이 아니다

(모든 고난은 끝이 있다)

 

마지막 울타리까지 거두어졌고 욥은 

온몸에 종기가 났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지만

 

일주일 동안

한마디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잘 나가던 욥이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폭망 할 수 있는가?

기가 막혔습니다.


일주일 동안 아무 얘기도 못했지만

 일주일이 지나가자 친구들 4명 중에

가장 연장자인 엘리바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인과응보입니다. 

잘 나가던 자네가 한순간에

폭망 한 것은? 

 

자네가 뭘 잘못했기 때문에, 실수했기 때문에 

죄를 범했기 때문에 벌 받은 거 아니야?

이렇게 얘기한 겁니다.


욥은 이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습니다.

나도 내가 왜 이런 험한 꼴을 당해야 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자네가 한 말은 내가

수긍할 수 없네라고

 친구들과 논쟁을 합니다.


친구들도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는 

욥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욥은 하늘의 지혜를 만나야만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반항했습니다.
하나님께 엄청나게 불평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욥을 만나주셨습니다.
욥기 42장 7절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편들어 주셨습니다

인과응보, 뿌린 대로 거둔다

그럼 욥의 친구들이 한 말이 틀렸습니까?

 

그 말의 내용이 잘못된 게 아니라

 적용이 잘못됐습니다.
억지로 적용하고자 하면 잘못된 겁니다.

 

 그 말이 모든 경우에 맞는 말은

아니라는 거예요.

욥의 경우는 적어도 그것을 적용할 수가 없다

 

왜 그렇습니까? 

까닭 없는 고난도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게 우리가 함께 읽은 욥기 2장 3절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공감일 때가 더 많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실패한 것은

 공감의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자기 나름대로 정답을 들이댔기 때문입니다.


욥의 불행을 아파하면서 

일주일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우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신학과 

자신들의 경험과 

자신들의 생각과 자신들의 철학을 가지고

 

 욥의 삶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말과 행동은 폭력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잘 나가던 여자 집사님이 계셨어요. 

사업을 좀 하셨습니다.
근데 사업이 도산을 해서 부도를 맞았습니다


그 바람에 집까지 날리게 되었습니다.
기가 막힌 일을 당한 겁니다.
너무 실망했고 앞이 보이지 않고 캄캄했습니다. 

 

한동안 교회를 못 나갈 정도였습니다.
교회에서 심방을 왔습니다. 

그래서 울고 있는 집사님을 가까스로 위로해 주었는데


같이 갔던 또 다른 여자 집사님 중에 한 분이

가까스로 울음을 멈춘 그 집사님에게

"집사님, 혹시 십일조 떼먹은 거 없수?"


그 순간 그날 심방은 꽝이었어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안 그럴 수도 있어요. 

 

서둘러 눈물을 닦아주기보다는요.
함께 그냥 울어주는 슬픔의 공명이 역설적으로 

그것을 딛고 설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고통받는 분에게 

섣불리 충고하지 않는 것이

 성숙한 태도입니다.


그들에게 멋진 설교를 하지 않는 게

 더 멋진 설교입니다.


다만 애정 어리고 

걱정 어린 몸짓으로 

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해 주는 거예요.


얼마나 기가 막힐까

얼마나 힘들까 

거기까지만 해주면 돼요.

거기까지만 해주면 

그분이 스스로 내 마음이 공감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치료가 일어나고 있는 거거든요.


여러분 ~~까닭 없는 고난

얼마든지 있습니다. 

신비의 고난도 있습니다.


인생의 신비 앞에서

 더 신중하고 

겸손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 욥에 관한 2번째와 3번째 메시지는 

직접 영상을 통해 들어보세요

저는 밤새도록 듣고 들으니 많은 위로가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