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QT

CGNTV QT (생명의 삶)/예수님처럼 기도하십시오(마가복음11:15-25)...이해영목사

유보배 2013. 3. 25. 06:32

고난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한 주간동안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우리도 기억하며 묵상해야 하는데요

CGNTV 생명의 삶 큐티도 고난주간에 맞추어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살아가라고 가르치셨던 말씀으로 바뀌었네요

이번주에는 이해영목사님을 통해 들려주시는 고난주간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이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따라가기를 원해요.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얻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매매를 하고 돈을 바꾸며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분노의 마음을 가지시고 그들을 내쫒으시며

성전을 정화하시는 사건과 또한 무화과 나무를 찾아가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를 나무라시며 뿌리째 말라지는 저주의 사건을 통해

주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마지막 수난의 일주일 가운데 첫 날의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시려는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아요.

유월절에는 성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므로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은 재물을 손수 가져오기 힘들어서 사람들이 성전에서

돈을 바꾸고 재물들을 매매하는 일들이 빈번히 있었지요.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얻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주님께서는 장사라는 자체를 비난하거나 불쾌히 여긴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주님을 기억하며 이 고난주간을 지낸다는 것은 단지 주님의 고난을 슬퍼하거나 의식적인 어떤 종교적 행사나

거룩한 의식을 되풀이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거에요. 우리는 실로 주님을 닮기 원하고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성전을 정화하시는 모습속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 성전이심을 읽어내야 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3:6)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예수께서 참 성전되신다는 것과 더불어 우리도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이 분명한 사실을 굳건하게 믿으며 확신해야 합니다

참 성전되시는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

 

우리는 그저 주일성수하며 교회를 출입하는 그것을 신앙이라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예수님이 참된 성전임을 기억하며 우리도 참된 성전이 되고자 하는 다짐과 결심이지요.

우리가 성전된 삶을 산다는 것은 기도하는 삶을 산다는 이야기에요.

따라서 우리의 삶은 기도하는 삶이 되어야 하지요.

우리들의 삶과 신앙이 참된 기도가 되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유월절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책망과 분노가 있었던 것은

성전을 향한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예배, 제사가 진정한 기도가 아니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성전을 출입할지라도 그것이 참된 기도의 삶이 되지 못한다면

성전 정화를 위해 주님이 분노를 일으키셨던 것처럼 우리도 정화의 대상이 될지도 모를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왜 제철도 아닌 때에 무화과나무에게 열매를 바라셨을까요?

아마도 무화과 나무 사건은 성전정화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으로

그것은 우리에게 기도의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우리의 삶이 기도가 된다는 것은 삶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언제나 그 자리에 주님이 원하시며 기쁨이 되어지는 삶, 주님이 만족하시며 그 뜻을 이루어가는 삶이 되기를 원해요.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나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쩌면 이것은 틀림없는 주님의 권면이며 충고이며 경고일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믿으며 참된 성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진실로 기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 말씀은 단지 우리의 세속적인 목표와 소망을 구하면 얻는다는 단순하고 기복적인 축복을 의미하는 말씀은 아닐거에요.

우리 삶속에서 수많은 의심과 걱정, 세상의 모든 방식들이 어우러진 채 그렇게 혼합된 기도를 한다면 성전에서 돈을 바꾸고

물건을 매매하는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없지요 

우리들이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성전을 오가는 사람들처럼 불일치된 신앙을 유지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을 믿는 참된 성전의 삶, 기도의 삶이라고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과는 조금 달라보이는 용서의 이야기같지만  제철이 아닐 때에 무화과 열매를 원하신 것처럼

용서와 화해는 우리의 삶속에서 너무나 필수적인 신앙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가 삶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생활이 성전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정화되어져야 할 대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기도하라 하신 주님~~

고난주간의 첫날입니다

현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운지라도 십자가 지고 가신 주님을 바라보며 감당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그 십자가를 나도 지고 기쁘게 따라가는 한 주간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삶이 기도가 되고 성전이 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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