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목 목사님 말씀

예수는 꼭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는가?(고린도전서1:22-24)...이종목목사

유보배 2016. 3. 23. 05:31


할렐루야~~ 주님의 죽음과 십자가를 묵상하는 고난주간 3일째 아침입니다.

오늘은 예수는 꼭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는가?라는 이종목목사님의 주일설교를 요약해서 전해드립니다.


외국인이 우리 대한민국에 오면 놀라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가도 가도  십자가가 보이기 때문이지요.

십자가는 곧 교회고, 교회의 상징은 곧 십자가입니다. 성도들에게 십자가는 신앙의 중심이에요.

우리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습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됩니까? 그냥 용서해주시지~~

성도들 가운데도 "내 죄는 내가 책임져야지 왜 예수가 내 죄를 책임지냐고" 십자가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스승으로 모시고 산상수훈인 교훈만 받아들이며 살면 그만이지 왜 대속의 교리가 필요하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인간의 행위나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나무에 달려 죽는 자는 다 저주받는 사람인데 어떻게 메시야가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헬라인에게는 십자가가 어리석어 보여요. 사람은 지식과 지혜로 변화될 수 잇는데 왜 십자가를 말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기적을 찾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기독교인들은 다릅니다.


인간의 말과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전하겠다는 것이 사도바울의 결심입니다.

십자가는 당시 사형수가 사형을 당할 때 쓰는 사형틀인데 왜 이것이 기독교 중심의 메세지가 되었을까요?

이것이 우리들의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여러분 기억합시다~~참된 용서는 값비싼 고통이 따라요.

용서는 결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고 자꾸 생각나지만 생각을 안 할려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상처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만들어질 때는 또 다른거에요.

어떤 사람이 내게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주고, 행복을 뺏어가고, 기회를 뺏어가고, 자유를 뺏어간다면 분노와 고통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상처받은 것을 똑같이 되갚아준다며 미워하고, 거칠게 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악한 소문을 내면 고소할 것 같아도

자신에 대한 연민과 상대방을 향한 분노와 미움때문에 그 속에 갇혀버리고 맙니다.

이해인 수녀는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계속해서 미워했더니 내 마음의 하늘에는 먹구름만 있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처를 해결하는 다른 길도 있는데 그것은 용서하는 길입니다.

용서는 상처를 준 사람이 그 댓가를 치르지 않도록 만드는 거에요.

상대방이 내 이름을 모욕해서 상처를 받으면 식욕도 없고 잠도 안오고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요.


그런데 원한과 냉소에 사로잡힌 사람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계속 거기에 붙잡혀 살지만 

그 사람의 고통을 내가 감내하는 사람은 힘들어도 자유가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용서의 길을 선택하므로 부활을 맛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독일 히틀러정권에서 39세의 나이로 순교한 본훼퍼는 자기가 감내하는 것은 형제의 죄악인데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십자가의 힘입니다.  죄를 무시하지도 않고 죄를 봐주지도 않았지만 십자가의 힘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고난주간인데 여러분에게 도전합니다.

왜 예수님은 그냥 용서해주시지 십자가에서 죽으셨을까요?


어느 찬송작가가 이야기 한대로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를 돌아보니, 걸음마다 자욱마다 다 죄 뿐입니다~~~"

에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죄악을 그대로 갚아주신 게 아니라 당신께서 그 고통을 다 짊어지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건인데 그냥 말로 하는 용서가 아니고 여러분과 저의 고통을 다 짊어지신 거에요.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의 사건이 오늘까지 이어져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다 속죄하였다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성경안의 작은 성경이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나의 과거의 죄는 그리스도의 피로 덮어졌

현재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며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에 설레임 가운데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이 앉아있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앉혀놓은 거에요.

나의 쾌락을, 나의 돈을 , 세상의 명성을 하나님 자리에 앉혀놓고 그것을 섬기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가 앉아있어야 할 십자가의 형벌에 그리스도가 앉은 자리바꿈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자식을 너무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맞추어 주었다는 놀라운 사실이에요.


누구나 다 상처가 있어서 성공한 사람의 내면에도 외로움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막 칭찬을 해주어도 한 쪽 구석에는 허탈감이 있는거에요. 이게 인간이에요


혹시 실패를 하면 사람들이 나를 멀리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남과 비교하면서 약해지니까 누군가를 자꾸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함께 있어주기를 바라고 도움을 구하고 사랑을 구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숨이 막히는 거에요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사람에게 기대지 마십시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을 통해서 무언가를 원하는데 채워지지 않아서 화가납니까?

그래서 우리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왜 시험받는지 아십니까? 사람에게 기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로 용서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정말 힘드세요? 정말 용서하기 힘듭니까?

그럴 때 사람에게 달려가지 말고 먼저 하나님에게 달려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해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사랑하는 딸이다, 네가 누구와 함께 있든지 어떤 삶의 자리에 있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이 음성을 들어야, 십자가의 사랑이 내 속에 들어와야, 마음의 공간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반사하는 반사체입니다.


우리는 정말 십자가에 못 박혔나요? 여전히 살아있지는 않나요?

여러분과 저의 진짜 자랑은 생명을 주기 위해 고통을 받으셨던 십자가만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에도 십자가를 바라보면 예수님이 보여야 하고 그 자리에 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노력과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do~하라~노력하라~ 성취하라~노력하면 의로워 질 것이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기독교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이루었도다 ,이미 구원받았도다,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도다~~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십자가 앞에 내려와서 내 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나요?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두려워하지말고 참 자유를 누리고 확신을 얻는 오천의 식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교만에서 벗어나 겸손하게 하시고 서로 용서하며 사랑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