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목 목사님 말씀

사랑의 하나님이 왜 지옥을 만드셨는가?(누가복음 16장 19-31절)...이종목목사

유보배 2016. 2. 26. 06:22



할렐루야~~우리 오천교회는 사순절기간에 “현대인의 여덟 가지 질문”이란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사랑의 하나님이 왜 지옥을 만드셨는가? 이종목목사님의 말씀을 요약해서 보내 드리는데요

조금 주제가 무거울 수 있지만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며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죄악으로 가득 찼던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 롯은 "이 성이 곧 멸망당하니 나와 함께 성 밖으로 나가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롯의 사위들은 ‘이 성 사람들이 이렇게 즐겁게 사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듣지 않았습니다.

롯의 이야기를 농담으로 여긴 그들은 결국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을 당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농담정도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세 번 놀란다고 합니다.

“아니 저 사람도 여기에 왔네. 그런데 그 사람은 왜 오지 않았지. 나도 왔구만.”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와서 놀라고, 올 사람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안 오고, 자신이 온 것도 놀란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반대로 지옥의 경우는 어떨까요?

마찬가지 아닐까요? 

 

또한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지옥과 같은 장소를 만들어서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서, 사랑의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가? 묻고 있습니다.


그 질문이 맞나요? 사랑하면 화를 안 내는가요?

만일 우리 자녀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잘못된 길을 간다면 화를 내지 않을 부모가 있을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화를 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화를 내십니다.

인간의 사악과 불의로 인해 땅의 평화와 온전함을 해치기 때문에 진노하십니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공격했는데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종교가 제공하는 내세의 약속 때문에

부당한 사회적 조건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짜 아편은 ‘죽음 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믿음입니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3사람이 숙청되었습니다.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정치수용소로 보냅니다. 사람을 쉽게 죽입니다.

죽음 후에 아무 것도 없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신과 탐욕과 살인이 심판받지 않으니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아도 됩니다.


만일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된다고 믿는다면, 이 세상에서 폭력이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분노하십니다.

온갖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끝이 아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지옥이 있다고 칩니다.

짧은 세상을 살면서 지은 죄로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는 것이 형평에 맞느냐고 질문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이슈 중에 하나가 ‘묻지 마 살인’인데 화가 나면 서로 모르는 사람도 해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화가 나서 눈깜짝할만한 사이에 총으로 사람을 쏘아서 죽였다고 합시다.

또 어떤 사람은 몇 시간 동안 사람을 괴롭히고 주먹으로 때려서 상대방을 병원에 실려 가게 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두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더 큰 죄를 지었나요?

1초 만에 사람을 죽인 사람인가요? 한 시간 동안 폭력을 휘두른 사람인가요?

형벌은 죄를 지은 시간에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죄의 질이 문제입니다.

시간이 선적 개념이라면, 영원은 입체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옥은 과연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은 지옥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도록 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한 부자와 나사로’라고 불리는 사람이 똑같이 죽었는데 그들은 천사들에게 받들려서 저 세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천국)으로 갔고, 한 부자는 음부(지옥)로 갔습니다.

지옥으로 간 부자는 불꽃 가운데서 심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고통 중에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여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저기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제 혀를 서늘하게 해주십시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거절당합니다.  천국과 지옥을 서로 오갈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이어서 그 부자는 다시 한 번 간청을 합니다.

"아직 세상에는 내 형제들이 남아 있으니 나사로를 증인으로 보내주십시오.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보면 저들의 마음이 달라질 것입니다.

땅에서의 생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국과 하나님이 있음을 증거 하게 해 주십시오.

제발 저들이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해 주세요. 내 형제들이 내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러나 또 거절당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 전하는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있다할지라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잠시 동안은 마음을 열지만 곧 하나님을 잊고 살 것이니 보낼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물 한 방울도 나눌 수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사랑도 복음을 나눌 수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사랑이 없는 삶이라면 지옥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생활은 가난하지만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의 삶에 바싹 매달려서 영원한 삶에 대해서 잊고 산다면 이미 지옥을 경험하고 사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부자가 왜 지옥에 갔는지, 거지 나사로는 어떻게 천국에 갔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부자의 삶 속에서 그 원인이 될 만한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자는 남을 해코지 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화려한 옷을 입기 좋아하고 날마다 잔치를 하며 자기몸의 쾌락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고 남의 고통에는 무관심했습니다.

남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자기 영혼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부자는 자신만을 위해 살았기 때문에 그의 삶이 남에게 선물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미 지옥과 천국을 경험하며 살지 않습니까?

저는 지난 한 주간 리 스트로벨이 쓴 <The Case for Grace>, 우리나라 말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눈물에 젖곤 했습니다.

리 스트로벨이 ‘스테파니 패스트’라는 한국계 미국인을 소개하는 내용인데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미국인과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스테파니는 평생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1950년 한국전쟁 때 참여했던 사람 정도로만 압니다.

한국나이로 5살이나 6살 쯤 되었을 때 엄마는 ‘삼촌이 곧 데리러 올 것이니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가 버렸습니다.


스테파니를 버린 것입니다.

전쟁 후 오늘과 같은 고아원시설들도 제대로 없던 때라 사람들에게 튀기라고 불리며 온갖 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더 힘들었는데 먹을 것을 훔치다 우물 같은 데 버려졌다가 지나가던 할머니에 의해 살기도 했고 또 한 번은 먹을 것을 훔치다 잡혔는데 사람들이 물레방아에 몸을 묶는 바람에 입안에 피가 고이고 눈이 붓고 지쳐있을 때

어느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말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너는 꼭 살거라. 살아야 한단다."


전쟁 후 거리의 아기들을 구하는 스웨덴 출신의 월드비전 간호사 아이리스 에릭슨에 의해 스테파니가 구조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간호사가 그냥 지나치려하는 데 “그 아이는 내 것이다”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주변을 살펴보아도 아무도 없었는데요...그 간호사 덕에 스테파니는 고아원으로 와서 아기들을 돌보며 살게 되었습니다.


고아원에서 있는 지 이년 쯤 되었을 때 하루는 데이비드와 주디 부부 선교사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그 선교사 부부가 스테파니의 손을 잡았지만 스테파니는 손을 뿌리치고 침을 뱉고는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다음날 또 찾아와서 뜻밖의 선언을 하는데 스테파니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 후 입양되어 미국으로 갑니다.


그 후에도 스테파니는 자기가 언제 버림받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사랑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고 상처가 커서 사람들을 경계했습니다.

그렇게 차갑게 굳어져있던 내면이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무너져 내립니다.


자신의 수치와 죄를 알고도 자신을 사랑한 예수님 때문에 통곡을 합니다.

지금 스테파니는 선교사가 되어 그 남편과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나중에 스테파니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테파니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종이 아니다. 하늘 아버지의 영원한 자녀다.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하고 그분의 수용은 조건이 없으며 그분의 애정은 영원하고 그분의 너그러움은 다함이 없다.

하나님 아버지가 영원히 내 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우리를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사는 삶이 천국입니다.


그러나 지옥의 삶은 어떻습니까?

스테파니가 사랑을 알지 못했을 때 선교사 부부가 손을 내밀자 뿌리치고 침을 뱉은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그렇게 행동할 때는 없었습니까?


때로는 질병으로, 고난으로, 인관관계를 통해, 사건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아 이것은 우연이야..의술이 좋아서 병이 치유되었어..내가 열심히 노력했거든..’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하나님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처럼 나 자신에게만 몰두하며 살지는 않았습니까?

빛 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는 그 자체가 심판입니다.


LA에 사는 한국인 노숙인이 한인타운에 약 100명쯤 된다고 합니다.

큰 꿈을 안고 미국에 갔던 사람들로 한 때 사업에 성공하던 사람들, 잘 나가던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직장을 잃고 파산하고 삶이 무너진 것입니다. 

 

노숙인 중에 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은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중독의 현상이 지옥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중독은 삶의 덫입니다.

마약이나 알코올, 노름, 포르노, 게임 등 중독현상은 스스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겠다고 자기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삶입니다.


처음에는 해체가 이루어집니다.

사람은 영과 혼과 육이 있지만 육의 즐거움과 흥분을 찾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똑같은 희열을 느끼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만족함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 다음에는 고립이 따라옵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변 상황을 탓합니다.

스스로 연민에 빠지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원망합니다.

‘모두들 나만 나무란다.’고 남의 탓만 합니다.


중독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약을 사기 위해 전 재산을 씁니다.

고립은 점점 심해지고 부정망상과 자기몰두는 커져갑니다.

가족들도 감당을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중심으로 삼으면, 중독으로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반면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의 길을 따라서 살면서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까?

내 인생 내 맘대로 산다고 자기 자신에게만 집착하다가 지옥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옥은 과정입니다.

또한 지옥은 죽음 후에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이해하기 쉽도록 세 가지 이미지를 사용하셨습니다.


형벌의 이미지(영벌-마 25:46)

‘우리가 손가락을 불에 대고 몇 초나 견딜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지옥을 설명하실 때 극심한 괴로움을 설명하려고 하셨습니다.


파멸의 이미지(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실 수 있는 이-마 10:28)


박탈의 이미지(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남자와 어리석은 처녀들이 ‘바깥 어두움’으로 쫓겨남-마 22:13)

인간이 죽으면 육과 영혼이 분리됩니다.

그런데 영혼이 육체를 떠니 지옥으로 가게 되면 괴로움과 파멸과 박탈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곳이 지옥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족 중에 혹시 나중에 “나는 지옥이 있는 줄 정말 몰랐어..난 농담인 줄 알았어"

한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이런 현상들이 안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용서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가 회개하기만 하면 우리의 죄악이 십자가에서 갚아 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렸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용서함도 없는거에요. 

그것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되어 천국백성이 되기 바랍니다.

씨에스 루이스는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라는 책에서 통찰력 있게 지옥과 천국을 표현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천국입니까? 아니면 ‘내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는 지옥입니까?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천국에 서시는 오천의 가족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천국을 맛보고, 저 세상에서도 천국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