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목 목사님 말씀

하나님의 의(로마서 1장 16-17) 1편.......이종목 목사

유보배 2025. 10. 27. 08:03

 

오늘은 508주년 종교개혁주일인데요

우리 이종목 목사님의 말씀이 정말 은혜가 되었어요

기독교인이라면 꼭 새겨들어야 할 것 같아요

 

https://youtu.be/MgB7vC5ScL8

제게 다가온 말씀을 나누어서 전해드리니

 은혜와 도전과 깨달음을 얻어서

우리의 삶이 승리하고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종교개혁자, 즉 종교 개혁의 불씨를 댕겼던

마틴 루터의 영혼을 소생시킨

구절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이에요.

 

오늘이 종교 개혁 주일입니다. 

오늘 설교가 

여러분에게 조금 딱딱하게 들릴 수 있어요.


그렇지만 개신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원인을 찾아가는 거니까

딱딱하게 들릴지라도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로마서 1장 16절과 17절은 

로마서 전체의 주제입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에요.


지난 주일에 오천새생명축제 때

제가 태어남의 비밀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오늘 설교는 2부가 될 겁니다. 

 

거듭남이 내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처럼

성령이 내 안에 심기는 것처럼

칭의,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지위에 있느냐

위치에 있느냐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복음에

 대해서 잘 요약해 줬거든요.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라고 했어요

십자가의 복음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서 계속 기적을 이끌잖아요.
십자가가 그들에겐 저주의 상징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십자가를 거리끼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리스도인들은 철학적 지혜를 자랑했잖아요. 

그러니까 어리석게 왜 죽어?

십자가를 어리석게 생각을 했어요.


로마 사람들 가는 곳마다 나라를 확장시키니까

 제국을 확장시키는 가운데에

 말을 안 듣는 사람, 또 죄인들이 있으면 엄하게 사형시키는 

사형의 도구로만 십자가를 생각했어요.

 

여러분, 21세기에 사는 현대인들은 어떻습니까?
현대인들은 물질적인 풍요,

개인의 욕심,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대해서 관심 없습니다.


그냥 어느 종교의, 기독교의 한 

표식일 뿐이야라고 생각하죠.
그리고 부담스러워요. 부담스럽게 생각해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십자가가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기쁜 소식이죠.

 

유대인들에게는

다윗의 자손 예수가 바로 누구냐?

메시아고 부활하신 세상에 주인이시다


로마 황제 가이사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가 주인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아마 의심이 생길 거예요. 

 

하나님의 성품인 그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죄지은 사람을 찾아내서.

심판하고 악을 주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라면

 그 누가 그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지?


여러분. 그런 생각 안 드세요? 

하나님의 의가 이게 정말 기쁜 소식인가요?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까?

 

 고민되지 않습니까?

마틴 루터도 똑같았습니다.

불안에 사로잡혔어요.


그는 22살에 수도원에 들어갔어요

아침 새벽 2시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6번에 걸쳐서 예배를 드리고 

8시만 되면 딱 취침을 했어요.

 

엄격하게 생활했어요. 

이 수도원은 어디서나 다 청빈, 순결. 순명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기 위해서

 그가 열심히 기도하고 수도를 닦았어요.
죄지은 것이 있으면 고헤성사를 하러 신부에게 달려갔어요


그리고 죄를 고백합니다. 

그래도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아요.
내가 혹시 고백하지 않은 죄가 있으면 어떡하지? 

 

또 고민이 돼서  찾아가고 찾아가요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가 루터에게 자꾸 오지 말고

한꺼번에 죄를 고백하라고 말할 정도로요

로마에 가서 

빌라도의 계단이라고 하는 

28개 계단을 무릎으로 꿇고 올라가면서 

 

말하자면 자기 스스로가 그렇게

  자신을 쳐가면서 복종을 했지만 

그래도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면 가까이 갈수록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면 가까이 갈수록 

내 죄가 더 커 보이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아무리 선행을 해도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도달할 수가 없는 거예요.


마치 하나님이 뭐 못하는 것이 있나?

살피고 쳐다보는 것 같아서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오늘 말씀에 부딪히게 된 겁니다. 

우리 한번 1장 17절 다시 읽어볼게요.

루터가 번개를 맞은 것 같았어요, 번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성품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롭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 

 

그거였구나.
고린도후서 5장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죄인인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관계를

 올바르게 연결시켜 주기 위해서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형벌을 다 받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더 의롭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왔다.


이것을 깨닫게 된 마틴 루터는

하나님은 나의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 아니라 

나의 죄를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시고 

용서해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이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루터가 얼마나 좋았는지

이렇게 표현했어요.

이 말씀이 깨달아지니까

내가 천국 문으로

막 들어가는 것 같아요


얼마나 의롭게 살려고 애썼는데요.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요.

그래도 없어지지 않는 죄책감, 절망감이 있었는데

 

 그게 하나님의 성품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의가 

 

전가되는 그 은혜임을

깨달으니까

세상이 바뀌어 보이는 거예요

 

내 가슴속을 미움 대신에

형언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의 달콤함으로 가득 채웠다.


이렇게 깨달음이 오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 지금으로부터 508년 전.

1517년 10월 31일, 이번 주간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종교개혁주간으로 지킵니다

가톨릭에서 면제부를 판매했는데

 면벌부라고 합니다.


그 면벌부를 판매했는데

그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95개 조로

이렇게 써서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 앞에 붙였습니다.


그 1항이 이겁니다.

♣ 내일 뒷부분의 말씀을 보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