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씀에 이어서 보내드립니다

요즘 계속해서 믿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말씀에 대해서 묵상하게 되는데
우리 믿음이 뭘까요?
이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일까?
저는 자격 없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일반 백성들을 어렵게 만든 장본인이 자신인데
과연 자신의 아들을 낫게 해달라고
자신 있게 예수님께 갈 수 있었겠는가?
그렇죠? 예수님게 나아가서 간청하는
자격 없음이 이 사람에게는
가장 큰 장벽이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벽을 뛰어넘어서
예수님의 거절함에도
이 왕의 신하는 계속해서 주님께 간청합니다
이 간청하는 믿음이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이 되길 축복합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돼요.
혹여나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나는 자격이 없는데 나처럼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과연 주님께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다고 한다면
오늘 이 왕의 신하와 같이 믿음을 가지시고
당당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이 자격 없는 이방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외인이었던 이방인이었던 사람들,
구원의 자격이 없었던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사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주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게 된 줄 믿습니다.
십자가에 의지하여
그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주님 앞에 나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왕의 신하가 요청하자
주님께서는 그의 요청에 이렇게 답을 하십니다.

몇 번이고 예수님께 나아와서
"제발 우리 아이 좀 고쳐주세요"라고
간청하는 이 왕의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딱 이 한마디 말씀하셨는데 이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갔다라는 거에요
무심한 듯 "네 아들이 살아있다"
지나가신 듯하신 말씀인데
왕의 신하는 그 말씀을 믿고 가버나움으로 향했어요
가버나움과 가나안 사이는 굉장히 깁니다.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에요.
그럼에도 이 말씀 믿고 갔을 때에 아들이 살아나게 되죠.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필요하다
라는 거예요.
오늘날 사람들은 보는 것만큼만 믿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아는 만큼만 믿게 되어 있어요.
내가 경험하는 그 경험 선 안에서만 믿음을 갖게 돼 있어요.
이게 연약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표적과 기사를 봐야지만
엄청난 퍼포먼스와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 있어야지만
은혜 받았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왕의 신하는 어떻습니까?
계속 거절하시는 주님께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달라고 계속해서 간청하는
이 왕의 신하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씀이 뭐였을까요?
네 아들이 살아있다
그렇게 원했던 네 아들이 살아있다라는
그 말씀을 믿고 간 왕의 신하의 믿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표적과 기사를 오늘날 언어로 바꿔 보면
아마도 자극적인 무엇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너무 복음의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세련되고
호화스러운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전국에 계시는
유명한 내노라 하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우리는 얼마든지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자극적이고
호화롭고 요란스러운
무언가를 더 갈망하는지는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예전의 믿음이 너무 그리워요.
예전에는 목사님들이
다른 미사여구를 하지도 않았어요.
"예배드리겠습니다"
종 땡 땡 땡 세 번만 쳐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여러분들 그런 시대는 없었던가요?
옛날에는 풍금으로 반주를 하고
심지어 풍금이 없어도 박수 치면서 찬양해도
그게 그렇게 은혜가 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자꾸 눈에 보이는 것을 원합니다.
느껴져야만 믿으려고 합니다.
무언가 특별한 체험이 있어야 확신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 믿음 갖기를 원합니다.
어쩌보면 우리는 호기심에 가득헤서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지고 느껴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못하는 도마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비록 자격은 없지만
네 아이가 살아있다라는 그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그대로 믿고 따랐던 왕의 신와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뭔가 마음의 시원함은 없다 하여도
오직 주님의 말씀만 의지하여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많은 고기를 얻었던
베드로와 같은 그 믿음
네 아들이 살아있다
주님의 말씀 믿고 그대로 따랐던
왕의 신하와 같은 믿음이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소유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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