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통영여행... 유적지와 향토 박물관

유보배 2010. 8. 20. 13:20

 

34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하영 여름 방학숙제를 위해


우리나라를 빛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렬사와 세병관

향토 역사관을 다녀온 뒤

 유람선을 타고 한산도의 제승당에 갔다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선가 일성호가는 .....했던  그 칼인가?



 

전시실 앞의 지자 총통.

이곳에서 대포가 펑펑 터졌나봐요  


 

수줍어 하는 우리 하영이가 모처럼

활짝 웃는 곳이 총통 앞이네요

용감한 이순신 장군이 좋은 가봐요


 

 

국보 305호인 세병관

 

세병관은 이경준(李慶濬) 제6대 통제사가 두릉포에서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긴 이듬해인 조선 선조 37년(1604)에 완공한 통제영의

중심건물이다.이 건물은 창건 후 약 290년 동안 3도(경상·전라·충청도) 수군을 총 지휘했던 곳으로

 그 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아직도 멀리 남해를 바라보며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앞면 9칸·옆면 5칸 규모의 웅장한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건물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홍살을 세웠고, 후면 내진주열 중방 하부에는 머름을 설치하여 분합문을 달고 중방 위로는 판벽으로 마감하여

무인도(武人圖)를 그렸으며 천장은 소란반자를 설치하였다.

세병관은 17세기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경복궁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진남관(국보 제304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고,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그 역사성과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영 향토역사관은 통영시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각종 전시물품과 영상물들이 169평의 역사관 안에 전시되어있다.

사료들은 시대별로 구분되어 있으며 선조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 및 문헌·사진자료 등을 포함, 869가지의 자료들이 있다.

특히 이순신장군의 충무정신이 스며든 통영의 특성을 살려 임진왜란과 통제영 산하 12공방 관련자료들이 핵심을 이룬다.

한 나전칠기, 소목장, 통영갓, 문발, 부채, 연, 누비 등 각종 공예품과 통영오광대놀이, 승전무 등

유·무형문화재에 관한 영상자료도 관람할 수 있다.

어른은 요금이 200원이고 어린이는 50원이다.


 

안에서는 사진 찍기가 금지 되어 있어

 바깥에서 찰칵.

넘 더워서 얼굴이 빨갛네요~

 

 

 

 

주변의 한려수도 해상국립공원 가는 관광 요금표

하영이를 위해 비진도 해수욕장을 가려 했으나

물이 넘 차갑다고 안 간답니다. ㅠㅠ


어쩔 수 없이 택한 코스가 한산도

그래 요금도 싸고 시간도 없고

이충무공의 제승당도 보러 가자



 

가는 길에 보이는 거북 등대


 

하얀 파도를 가르며 신나게 가요

 

 

 충렬사가 이순신이 죽은 뒤에 지어진 이를테면 기념관 같은 것이라면,

 한산도에 있는 제승당은 그가 통제사의 큰일을 맡으면서 손수 지휘하여 지은 집이다.

 1593년 8월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 통제사를 제수 받아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 하였을 때 지금의 제승당 자리에 장수들과

작전 회의를 하던 운주당(運籌堂)을 세웠다. 그러나 원균의 모함을 받아 서울로 떠날때 까지

세해 여덟달 동안 머물면서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던" 그곳은 1597년의 칠천량 싸움에서 우리 군사가 지게 되자

 그때 경상 우수사이던 배 결이 거기 비축되어 있던 쌀과 무기 따위를 왜적에게 넘겨 주지 않으려고 불을 지름으로써 잿더미로 변하였다.

정유왜란 때 폐허가 되어버린 이곳에 제107대 통제사 조경(趙儆)이 1739년에 유허비를 세우면서 "제승당" 이라 이름 하였고

1976년 지금의 제승당과 충무사, 한산정, 수루 등을 새로 짓고 경내를 정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들어가는 입구의 수문장 아저씨와 찰칵~~~